인생 조언 격언 모음 3

명언 2013. 4. 7. 21:07 Posted by 광용버핑

 

* 자기 의견을 먼저 말하는 쪽이 패배한다. - 미우라 유우고(三村侑弘) <교섭의 명수>

* 독일의 빌헬름 프리즈라는 사람이, 인간 감정의 진폭을 1900년 초에 발견하였다. 인간 감정의 진폭이란 감정의 기복을 말하는 것이다. 더 알기 쉽게 말하면 '감정의 좋고 나쁜 상태'다.

감정의 상태는 여성과 남성이 다르며 남성은 평균 33일, 여성은 28일이다. 이것은 평균 일수이므로 35일 주기인 남성도 있을 수 있고, 30일 주기인 남성도 있다. 그리고 또 25일 주기인 여성도 있고, 30일 주기인 여성도 있다는 뜻이다.

즉, 이 주기에서 인간의 감정은 상승 커어브를 그리기도 하고, 하강 커어브를 달리기도 한다.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상승 커어브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심신이 모두 건전한 때이며, 본래 내성적인 사람도 사교적으로 상승되어 비교적 이야기를 잘 하게 되기도 하고, 타인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가 된다.

반대로 회화나 태도가 부드럽지 못하거나, 따라서 타인의 의견에 대하여 비판적이거나, 매사에 무관심하거나 하는 때는 하강 커어브에 들어간 기간이다.

이것을 교섭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상대방이나 나 자신이나 상승 커어브인 시기에 교섭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적어도 나는 어쨌든 상대방만은 상승 커어브인 시기에 교섭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렇게 상승 시기에 교섭을 하려면 인간 정보가 필요하므로, 상대방의 감정의 움직임은 일목요연하게 나 자신의 카아드에 기록해두는 것이 이상적이다.

- 미우라 유우고(三村侑弘) <교섭의 명수>


* 인간 심리란 참으로 야릇하여, 상대방보다 의견을 먼저 말하면 상대방은 그 의견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기 쉽다. 그러므로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질문을 하는 것이 낫다.

- 미우라 유우고(三村侑弘) <교섭의 명수>


* 자신의 감정의 일부를 개념으로 바꿀 수 있는 어른은, 어린애에게 그런 개념이 없는 것을 보고, 어린애에게는 그러한 체험 자체도 없는 줄 믿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토록 깊이 체험하고 이토록 깊이 고민한 적은, 내 생애를 통틀어서 좀체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제2장


* 처음으로 나는 죽음을 맛보았다. 그 죽음의 맛은 쓰디썼다. 죽음은 일종의 탄생이며, 무서운 갱신에 대한 불안이며 우려이기 때문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제1장

 

* 죄의 근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 - 손봉호 <나는 누구인가>

 

* 나는 혼자 살고 싶었다. 내 일생을 인식(認識)에 바치고 싶었다. 자유롭게.....

대학생이 된 후에도 나는 그럴 결심을 되풀이했었다.

 

그러나 운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롭지는 않다. 우리가 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이 우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기치 않았던, 때로는 소망하지 않는 방향과 형식 속에 생이 형성해 놓는다.

 

논리의 수미(首尾;konsequentes Leben)가 일관된 생을 우리는 희구한다. 그러나 생의 테제와 안티 테제는 논리에서처럼 당연한 일의적 단계를 밟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생은 너무나 혼돈적이고 어두운 밤의 측면과 꿈과 동경.....으로 가득 차 있다.

 

작은 우연이 일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은 유리알 처럼 맑게(glasklar), 성실하고 무관심하게 살기에는 슬픔,약함,그리움,향수를 너무 많이 그의 영혼 속에 담고 있다.

의식과 무의식이 일체가 되고 그와 객체 관계가 지양되는 투명한 순간은 우리에게 그렇게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분열된 의식과 전 우주에 대한 고독감에 앓고 있다. 인식과 플라톤이 말하는 에로스와 합하려는 노력만이 우리를 고독에서 구출한다.

 

그러나 우주선이 달세계로 가는 시대에 사는 인간은 영혼의 소박함을 잃은 지 오래 된다.

사랑도 변형된 호기심인 경우가 많고 사랑의 행위에서도 시적인, 너무나 지적인 것이 현대인이다. 누구나가 자기의 원칙과 독백 속에서 감금되어 있다. 자아에 망집(妄執)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공관 속을 꿰뚫는 것은 현대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기적 같은 희귀한 몇 개의 순간에서만 우리는 변신을 한다. 헌신과 희생이 가능해진다. 그 순간이 지나면 생은 다시금 어두운 것, 무표정한 것으로 된다. 그 속에서 아무 관련도 없이 제각기 인간은 산다. 고독한 탐구를 계속한다. 죽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한다. 몽상한다.

 

생은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 회한(悔恨), 모든 후회는 결국 존재의 후회(Seinsreue)로 귀결한다. -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홀로 걸어온 길'

 

* 태어났음의 비극은 피조물성 속에 있는 균열, 즉 시간과 공간으로 제한된 일정 기간의 생명이 신비한 힘에 의해서 우리의 의식없이 우리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불가지성(不可知性)속에 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짧은,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지루하게 긴 우리의 생에서 그래도 진주 빛 광채를 지닌 기간이 있다면 그것은 유년기이리라.

유년기- 그것은 누구에게나 실락원이다.

'더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라고 어떤 시인은 말했다. 어린 시절은 의외의 놀라움, 신비와 호기심, 감동에 넘친 지루하지 않은 한 페이지다. 그리고 우리는 몇살이 되어도 그 장을 펼쳐보고 싶어진다.

영원한 그리움- 그것은 고향에 대한 것이다. 원류(源流)에 대한 동경....영원의 고향에 대한 거리감에 앓는 것, 그리고 그곳으로 귀향하려는 노력을 플라톤은 향수라 했다.

어릴 때 우리는 모두 초시간적이고 불사신이었다. 존재의 상처를 모르는 이상주의자였다. 성장한 뒤에도 어린 마음을 상실치 않는 이상주의자, 즉 영원한 유아는 현실과 부딪칠 때 늘 생사를 건 모험을 하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어린애로서 즉 이데알리스트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일 뿐더러 종종 카타스트로프(破局)을 가져온다" 생에 좌초한 '어린애들' 위에 디디고 서서 개가를 올리는 것은 어느 세대에나 영원한 속물들, 인간을 목적으로 알지 않고 수단으로 아는 바리새인들, 현명한 준법자들, 투철한 리얼리스트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이데아가 없다.

따라서 유년기가 없다. -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홀로 걸어온 길'